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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안전하십니까?

화재 발생 시 대피의 중요성

일전에 한 언론사와 함께 서울에 위치한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산후조리원을 살핀 적이 있다. 화려한 건물 외형과 달리 들여다볼수록 이런저런 문제점이 눈에 띈다. 관할 소방서와 건물 관계자의 협조를 얻어 실제로 시간을 재며 극장 내부에서 옥외 비상계단을 통해 시행한 옥상 대피 훈련은 고민거리를 안겨줬다.

화재 시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가 막혀 있다?

우선 피난 약자(노약자, 장애인 등)에겐 너무 긴 대피 동선이 문제였다. 실로 많은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야 겨우 옥상에 도달할 수 있다. 좁은 부지에 여러 개의 상영관을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물 층수가 많아진다. 그러니 대피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다른 영화관에선 극장 내부에서 옥외 계단을 따라 지상 1층으로 대피하는 훈련을 시행했는데 아쉽게도 실패로 끝났다. 1층으로 나가는 철문 앞을 무거운 건축자재들이 가로막고 있어 나갈 수 없었던 까닭이다.

상당한 가격을 치러야 이용할 수 있다는 고급 산후조리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부로 대피하는 철제 계단은 건물 중간층에서 끊어져 있었다.(건물 매입 후 구조를 변경하면서 일부 철거 추정) 또, 화재 경보 시 산모가 아이를 직접 안고 대피해야 한다고 안내하는 등 시스템이 아닌 모성애에 안전을 의존하고 있었다. 이처럼 실로 믿기 어려운 풍경을 접하고, 직원에게 화재 발생 시 대피 절차에 관해 물었다가 외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불나면 대피 먼저’ 캠페인과 국가안전정보 통합시스템의 의미

우리 주변엔 일상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고 삶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곳이 있다. 이를 두고 다중이용업소(多衆利用業所)라고 일컫는데, 현행법에선 ‘휴게음식점, 단란주점·유흥주점 영업, 비디오물소극장업, 복합영상물제공업 등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영업 중 화재나 각종 재난 발생 시 생명·신체·재산상 피해 발생 우려가 높은 영업’이라고 정의한다.(「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제2조 다중이용업) 즉, 노래방, 찜질방, 산후조리원, 영화상영관, 유흥주점, 목욕탕, 고시원, 단란주점, 일반음식점, 안마시술소 등이 해당하는 셈이다.

주지하다시피 다중이용업소는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시설이다 보니 다른 장소에 비해 훨씬 엄격한 안전기준을 요구한다. 사고 발생 시 다수의 인명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7년 12월, 무려 29명의 생명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가 있다.

그럼 이러한 공간에서 화재 발생 시 이용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소방청과 한국소방안전원은 화재로 인한 사상자를 줄이는 차원에서 <불나면 대피 먼저>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 불과 연기를 확인하면 비상벨을 누르거나 ‘불이야’를 외쳐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건 기본이다. 이어 젖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벽을 짚으며 낮은 자세로 이동한다. 이때 비상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대피하는 게 이상적이나, 어려울 땐 옥상으로 올라간다. 119 신고는 먼저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한 후 시도하자.

한편, 일선 소방서는 다중이용업소 상태 즉, 소방시설·건물 현황, 화기 취급 여부, 숙식 제공, 건물 이용자 특성, 소화전 설치 여부, 소방서와의 거리, 소방차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험등급을 분류하고,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 작전에 활용하고 있다.

위험등급은 A(안전)·B(양호)·C(보통)·D(주의)·E(취약)로 나뉘며 이 기준은 화재 발생 시 얼마나 많은 인명 피해가 나는지에 기초한다. 따라서 등급이 낮을수록 ‘불났을 때 다수의 생명이 위험할 우려가 큰 곳’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인은 정작 자신이 이용하는 영업장이 어느 정도의 등급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다. 소방청이 제시한 2017년 자료를 보면 서울 내 다중이용업소 총 3만 9,384개 곳 가운데 ‘위험’으로 분류하는 D·E등급은 7.7%(3,028곳)나 된다. 특히 찜질방, 산후조리원, 영화관 등이 비교적 더 취약하다고 나와 있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 다른 모습의 제천화재가 빈틈을 노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이를 인지하고, 국민 스스로 안전할 수 있는 권리와 생명권 보장을 위해 내년까지 소방, 전기, 가스 등의 안전정보를 한곳에 모은 <국가안전정보 통합공개시스템>을 선보일 방침이라고 한다. 이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한다면 여러모로 더욱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도움받을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물론, 정보 습득만으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비록 화재 안전등급이 A등급일지라도 정작 종업원이나 시설관리자가 이용객 대피 요령과 소방시설 관리·사용법을 소홀히 한다면 결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안전등급은 시설물 전반에 관한 객관적 수치 제공일 뿐, 결국 이용자가 안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다중이용업소 이용 시 최소한 두 군데 이상의 피난 대피로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의 시스템이 일깨우는 함께 만들어 가는 안전

미 연방 소방국(U.S. Fire Administration)의 모토가 있다. 바로 ‘소방안전은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 가는 것(Fire safety is everyone’s responsibility)’이다.

재난을 딛고 우뚝 선 나라, 미국은 강력한 안전 관련법과 기준을 만들고 인력과 예산을 투자해 소방서의 화재 예방과 대응 능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또, 깨어있는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해 책임감 있는 안전문화 확산을 선도해 나간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주소는 어떤가. 우선 국가는 사회 전반에 굳건한 안전의식을 뿌리내리기 위해 국민의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다. 또, 이전 사고를 성급한 보상으로 마무리하기보다 하나의 사례로 인지하고 예방에 힘써야 한다. 국민 역시 자신의 안전에 대한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 모든 걸 정부에 의지하거나 필요할 때만 안전을 찾는 ‘안전 이기주의’를 다음 세대에 전파해선 안 되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비상시 대피 시스템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일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말 그대로 비상구는 상시 개방 상태를 유지하고, 소방시설은 설치기준에 맞게 정기 점검한다. 더불어 건물관계자는 비상시 대피 요령 등 관련법에서 정한 안전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면 현존하는 문제 대부분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토록 쉬운 일이 왜 현실에선 항상 어렵기만 한 걸까? 소중한 생명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되풀이하는 반성과 망각을 이젠 멈출 때가 되지 않았는가.

안전은 가장 기본을 실천함으로써 완성한다. 여기에 안전을 위한 예산, 관련법과 기준 강화,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직무윤리와 전문가 정신, 깨어있는 시민의식 등이 더해져 협업할 때, 그야말로 꽉 막힌 듯 보이는 대한민국의 안전 비상구가 활짝 열리리라 기대한다.

글. 이건 ∣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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